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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19 임진록2+ 조선의 반격 #8 깃푸 급습




제8장 깃푸 급습

제 8장 깃푸 급습

기본 사항

사용자 국가 - 소속

일본 - 미츠나리군

브리핑 참여자

고니시, 미츠나리

사용 장수 목록

초기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Konishi_Yukinaga.png

파일:SYW2PLUS_General_Ishida_Mitsunari.png

파일:SYW2PLUS_General_Wakizaka_Yasuharu.png

고니시

미츠나리

와키자카

 

 

 

파일:SYW2PLUS_General_Ukita_Hideie.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우기다

 

 

 

 

 

후발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기타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상세 사항

격전 지역

깃푸

임무 목표

1. 깃푸성의 적 진영을 섬멸하라.


참고로 깃푸가 아니라 기후(岐阜)다. 제작진이 헷갈린듯.

오사카를 무사히 방어한 서군은 이 기세로 곧바로 도쿠가와의 본성인 교토 앞에 있는 기후성으로 진격한다.

9시 보라색이 자주 보내는 카미카제와 처음부터 쳐들어오는 12시 진영의 세이쇼오를 주의할 것. 세이쇼오는 건물과 기갑에 강한 지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의해야한다. 세이쇼오가 아이템을 떨어뜨리면 못 쓰는 건 주워서 내다 팔자. 우선 귀갑차 + 조총병만 모일때까지 버텨주고, 적당히 모였다 싶으면 순회공연을 돌자. 어디부터 공격할지는 플레이어가 선택하자. 그 외에는 수비할 때 망루를 귀갑차로 감싸도 좋다.

여담으로 당시 기후를 다스리던 다이묘는 오다 노부나가의 손자인 오다 히데노부로 서군 소속이었다. 즉, 내전을 벌인 셈이다.





오다 히데노부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



오다 히데노부(일본어織田秀信1580년 ~ 1605년 6월 24일)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의 무장기리시탄 다이묘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적장손이자 노부나가의 장자인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의 적장자이다. 아명은 산보시(三法師)이며 사부로(三郎)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기후(岐阜)의 성주이자 동시에 조정의 관위가 중납언(中納言)이었던 연유로 기후노 중납언(岐阜中納言)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일본의 사료인 『공경보임(公卿補任)』에는 다이라노 히데노부(平秀信)로 기록되어 있다. 세례명은 페드로이다.

생애

덴쇼 8년(1580년오다 노부타다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덴쇼 10년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당시 조부 노부나가와 부친 노부타다가 모두 주살되면서 마에다 겐이(前田玄以)의 보호 하에 본래의 거처인 기후 성에서 기요스 성(清洲城)으로 거처를 옮겼다. 같은 해, 기요스 회의에서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의 추대를 받아 노부나가의 또 다른 중신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의 지지를 받던 숙부 노부타카(信孝)를 제치고 3세의 나이에 오다 가문의 당주가 되었다. 직할령은 오미 국(近江国) 사카타 군(坂田郡) 3만 석이었으며 나이가 어려 친정이 불가능하였으므로 호리 히데마사(堀秀政)가 영주 대리를 맡았다. 덴쇼 16년(1588년) 이름을 오다 사부로 히데노부(織田三郞秀信)로 바꾸며 성인식을 치뤘는데, 이 때 이름 중 ‘히데’(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따왔으며, ‘노부’는 조부인 오다 노부나가에서 따왔다.

게이초 5년(1600년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가 발발하자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의 서군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동군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이케다 데루마사(池田輝政)에게 패하여 거성인 기후 성을 빼앗기고 지위를 잃은 뒤 고야 산(高野山)에 은거하여 승려가 되었다. 이후 1605년 25세로 사망하였다.

평가

산보시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오다 가문의 가신들을 압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기세를 몰아 교토의 조정으로부터 관백의 지위를 받아내었으며 관백의 지위를 이용하여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군사행동 및 세력 다툼을 금지하는 내전 금지령을 교토 조정(일왕령) 이름으로 포고함으로써 전국의 다이묘들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권위에 굴복하게 하였다. 그럼으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더이상 오다 가문의 후계자인 산보시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이 필요없게 됨에 따라 산보시는 자연스럽게 일개 소 지방의 성주 가문(오다가문)의 산보시가 되었으며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일개 소 지방의 세력가로서 서군의 이시다 미쓰나리의 편에 가담하였다가 몰락하게 된 것이다.

Posted by 동네 오락실 구경하던 형 [동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