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기타규슈 정벌
제 12장 기타규슈 정벌 | |||||||||
기본 사항 | |||||||||
사용자 국가 - 소속 | 조선 - 조선군 | ||||||||
브리핑 참여자 | 김시민, 유성룡, 이순신 | ||||||||
사용 장수 목록 | |||||||||
초기 참전 장수 | |||||||||
권율 | 김덕령 | 김시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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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 유성룡 | 이순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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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 참전 장수 | (해당 없음) | ||||||||
기타 지급 아이템 | (해당 없음) | ||||||||
상세 사항 | |||||||||
격전 지역 | 기타규슈 | ||||||||
임무 목표 | 1. 남쪽과 서쪽의 섬을 장악하라(유성룡, 이순신은 살아야 한다). | ||||||||
한편 명으로부터 참전 소식을 전해받은 조선군은 명이 참전한 것에 의아해 하며 기타큐슈에서 명군과 합동 작전을 펼치기로 한다.
이번 미션의 특이사항은 장수가 무려 6명이라는 점이다. 이 임진록 게임에서 뽑을 수 있는 장수는 5명까지가 끝이고 그 이후로는 뽑을 수가 없다. 헌데, 이 미션에서는 특별히 한명을 더 줬다. 전비 역시 기존의 2, 500에서 200원 늘은 2, 700이다. 적은 10시 섬, 6시 섬, 3시에 진영을 갖추고 있다. 10시, 6시 섬 멀티는 매우 약해서 시작하자마자 영웅들만 데리고 가도 털어버릴 수 있다. 조선소는 두 개씩이나 필요하지는 않으니 수송선을 확보한 후에 하나 정도는 해체해도 문제는 없다. 비행기는 생산이 불가능하므로 수송선을 통해 움직여야 한다. 사명대사의 번개술이나 이순신의 기공신포 정도는 연구을 해주어 건물 파괴에 기여토록 한다. 간간이 병력도 뽑으면서 남는 병력들은 기지를 지키도록 한다. 농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곳 근방에 적병이 내리기도 하니 조심해야 한다. 또한 가미가제 테러가 매우 자주 온다.
어쨌든 영웅만 잘 활용하고 전 병력을 기지 수비로 돌린다면 막기 어렵지 않다. 드랍을 통해 첫 번째로 6시나 10시 섬 하나를 털어주면서 아이템도 구입하고 기술들의 연구도 차근차근 진행해준다. 이를 기반으로 손쉽게 나머지 섬 하나를 털 수 있는데, 주의할 점이 6시와 10시 섬을 다 털면 명의 원군이 나타나서 3시에 어택땅하다가 다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남은 한 군데는 마저 쓸어버려기 전에 잠시 남겨두자. 그 후 주력 병력을 3시 공략을 위해 그 근방 육지에 모두 내려놓고, 섬에 남겨둔 잔류 병력 몇몇으로 6시 또는 10시의 건물을 마저 깬다. 직후 등장하는 명군과 이여송이 탱킹하게 두고 적의 본진을 민다. 번개술과 기공신포 등의 기술을 건물에 쏴대면서 싸우면 쉽게 이길 수 있다. 그동안 상인에게서 아이템을 충실히 구입하여, 철력궁이나 백사탕, 달마의 염주 등등이 있다면 더욱 쉬울 것이다.
중반임에 불구하고 매우 빨리 클리어가 가능한 미션 중 하나이다. 이순신과 사명대사로 치고 빠지며 번개술과 기공신포로 적 건물과 유닛을 갉아먹으며 싸워도 영웅만으로 클리어가 가능하다.
뱀발이지만, 이 시대에 기타규슈(기타큐슈의 잘못)라는 지명은 없었다! 큐슈의 북쪽을 의미하는 지명 "기타큐슈"(北九州)는 해당 지역의 다섯 도시가 대등합병하는 과정에서 1963년에 지어진 지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영웅으로 나오는 사명대사 유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생애
임진왜란 이전
경상남도 밀양에서 임수성(任守成)의 아들로 태어났다.[1] 일찍 부모를 여읜 사명당은 13세에 황여헌(黃汝獻)을 사사(師事)하다가 황악산 직지사에 들어가 신묵화상(信默和尙)에게 선(禪)을 받아 승려가 되었고, 거기에서 불교의 오의(奧義)를 깨달았다. 1561년(명종 16) 선과(禪科)에 급제하고 당시의 학자·대부·시인들이었던 박사암(朴思菴)·허하곡(許荷谷)·임백호(林白湖) 등과 교제하였다. 1575년(선조 8) 선종(禪宗)의 주지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고 묘향산에 들어가 청허(淸虛)대사(서산대사)에게서 성종(成宗)을 강의 받고 크게 각성하였다. 금강산 보덕사(報德寺)에서 3년을 지내고, 다시 팔공산·청량산·태백산 등을 유람했으며, 43세 때 옥천산(沃川山) 상동암(上東菴)에서 하룻밤 소나기에 뜰에 떨어진 꽃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문도들을 해산시킨 다음 오랫동안 참선하였으며, 46세에 오대산 영감란야(靈鑑蘭若)에 있다가 역옥에 죄 없이 걸렸으나 무죄 석방되어 금강산에서 3년 동안 지냈다.
임진왜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순안에 가서 청허의 휘하에 활약하였고 청허가 늙어서 물러난 뒤 승군(僧軍)을 통솔하고 체찰사 류성룡을 따라 명나라 장수들과 협력하여 평양을 회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함께 경상도 의령에 내려가 전공을 많이 세워 당상(堂上)에 올랐다. 1594년에 명나라 총병(摠兵) 유정(劉綎)과 의논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를 울산 진중으로 세 번 방문하여 일본군의 동정을 살폈다. 왕의 퇴속(退俗) 권유를 거부하고, 영남에 내려가 팔공(八公)·용기(龍起)·금오(金烏) 등의 산성을 쌓고 양식과 무기를 저축한 후 인신(印信)과 전마(戰馬)를 바치고 산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였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수 마귀를 따라 울산왜성에 쳐들어갔으며, 이듬해 명나라 장수 유정을 따라 순천왜성에 이르러 공을 세워 가선동지중추부사(架善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임진왜란 이후
1604년(선조 37) 국서를 받들고 일본에 가서 교토 후시미 성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조선인 3500명을 데리고 이듬해 돌아와 가의(嘉義)의 직위와 어마(御馬) 등을 하사받았다. 그때는 청허가 입적한 이듬해로 묘향산에 들어가서 스승의 영탑에 애하고 치악산으로 들어갔다.
선조의 부보를 듣고 한양으로 달려와 배곡한 후 광해군의 서변을 지키게 하려 하였으나 병을 얻어 응하지 못하고 가야산에 들어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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