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오사카 최후의 전투[편집]

제 24장 오사카 최후의 전투

기본 사항

사용자 국가 - 소속

조선-미츠나리 연합군
(조선)

브리핑 참여자

김덕령, 유성룡, 이순신

사용 장수 목록

초기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Gim_Deokryeong.png

파일:SYW2PLUS_General_Samyeongdang.png

파일:SYW2PLUS_General_Ryu_Seongryong.png

김덕령

사명대사

유성룡

(청홍검)
(용기린갑옷)
(적토마의 갈기)

 

(용기린갑옷)
(손자병법)

파일:SYW2PLUS_General_I_Sunsin.png

파일:SYW2PLUS_General_Heo_jun.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이순신

허준

 

(철력궁)
(용기린갑옷)
(손자병법)

 

 

후발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기타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상세 사항

격전 지역

오사카

임무 목표

1. 오사카의 본영을 방어하라(유성룡, 이순신, 김덕령은 살아야 한다).
2. 오사카의 남쪽에 진영을 건설하여 적을 섬멸하라.


드디어 오사카에 도달한 조선군 본대는 김시민 장군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함과 동시에 꿈도 희망도 모두 잃어가기 시작하여 모든 것을 체념하려고 하는 이시다 미츠나리를 꾸짖으며 싸울 것을 독려한다. 김덕령도 오사카에 도달하기 전에는 힘들게 점령한 교토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아까워하지만, 역시 다른 장군들과 마찬가지로 미츠나리를 큰 소리로 독려하나, 김시민의 전사 소식에 약간 당황한다.

대망의 마지막 미션이나, 난이도가 너무 쉬워서 김빠지는 미션. 전비를 가득 채울만큼 화차 + 대장군포를 지원해주고, 또한 적들의 수도 적으며, 12시의 경우엔 자원을 캐지 않고, 10시는 나무를 캐지 않으며, 모두 농부를 뽑지 않는다. 이로 인해 난이도가 급하락하여, 극초반의 대규모 러시만 제외하면 초보라도 쉽게 깰 수 있는 수준이다. 

목표는 말 그대로 오사카 성을 지키는 것이다. 아군 일본군과 조선군 모두 병력을 생산할 방도는 전혀 없지만, 조선군은 영웅진이 튼실하고 오사카성에 당도한 후부터 수송기가 계속해서 9시에서 자동으로 소환되어 중앙으로 병력을 수송하여 주기 때문에, 유지만 잘하면 지키는 것은 매우 쉽다. 손에 여유가 남으면 이순신으로 적 기지 근처를 왔다갔다 하며 2연속 기공신포로 건물들을 몇 개씩 날려주자. 

게임시작 후 7분 정도가 지나면 미츠나리가 나타나서 병력들을 이끌고 갑자기 6시로 돌진하는데, 이때 병력들을 좀 데리고 같이 가서 6시를 밀어버리자. 가는 도중 미츠나리가 죽으면 숨을 거두면서 뒷일을 부탁하게 된다. 만일 플레이어 병사의 탱킹 때문에 미츠나리가 전사하지 않아도 6시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전사한다. 이후 이순신은 전군 진격을 명하고 이에 맞서서 송응창과 도쿠가와도 전군 진격을 명하며 마지막 최후의 결전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6시를 전멸 시키면 농부를 태운 수송기가 도착하는데, 사실 지금까지 모인 병력을 잘만 유지했어도 아예 발전을 하지 않고도 적을 다 털어버리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다. 기공신포 연구는 시작부터 되어 있으니 어려울 것이 없다. 적당히 생산과 발전을 진행하면서 적을 다 전멸시키고 엔딩을 보는 것만이 남았다. 망루가 별의별 희한한 곳까지도 구석구석 배치되어 있으므로 하나하나 잘 찾아내야 한다.

전투가 끝나면 삼국의 장수들이 전후 협상 회담을 하는 엔딩 동영상이 재생된다(BGM은 시나리오 조선).참가자는 이순신, 도쿠가와, 이여송의 세 사람[22]이다. 도쿠가와는 왜란의 원인이 전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인 욕망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양해를 구하는데, 이를 들은 이순신은 발끈하여 탁상을 내려치면서 왜란에서 조선이 당한 엄청난 피해에 대한 열변을 토한 후 왜국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일갈한다. 이여송은 서로의 감정만 내세우지 말고 모두에게 득이 되도록 마무리짓는 게 좋다는 말로 이들을 중재한다. 이후 해설이 나오는데 전승국인 조선은 대가로 대마도와 오키나와를 할양받았지만, 호란 때 청의 압력으로 다시 돌려주었다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조선의반격 잡이야기 및 팁
[1] 안에 조총병을 넣어주거나 화염차 소수를 섞어주면 더 좋다[2] 스킬들의 적중률은 사실상 100%이지만, 일반 공격의 적중률은 근거리 원거리 따지지 않고 적중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게임 전투 시스템 자체가 강력한 스킬을 지닌 용병이나 장수들을 주력으로 운용하게끔 강요받는 구조이다.[3] 극중 설정상 도쿠가와가 이시다와 조선 조정이 협력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아사코를 보내 그 사신으로 가는 고니시를 없애려는 것. 그리고 아사코는 여기서 "칫, 실패다. 어서 주군께 알리자."라며 퇴각.[4] 참고로 전작인 임진록 2에서는 차고 있는 칼을 사용하는 근거리 유닛이었다.[5] 병력도 뽑아두면 도움이 되긴 하지만, 화염차가 안택선 안에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한다. 누각선도 마찬가지.[6] 정확히는 대함대가 몰려오는 바다 옆에 대장간이 있지만, 귀갑차마저도 생산할 수도 없는 고물덩어리 건물이다.[7] 중앙도 공격하지만, 귀갑차, 닌자 한 마리뿐이다. 망루 2개만 배치해주자.[8] 만약 곽재우로 적용한다면, 곽재우는 마법장수라 폭뢰격을 충분히 난사할 수 있어 좀 더 쉬웠을 테고, 특히 미션의 팁 대로도 가능했을듯 했다. 김덕령은 그나마 1방씩만 쓸 수 있어 밸런스를 잘 맞춘 것.[9] 운이 좋으면 발석거를 살릴 수 있다. 엄청 어려워서 문제지.[10] 임진록 게임의 전비는 1, 500부터 시작해서 한명을 뽑을 때마다 200씩 늘어나며, 5명이 다 모이면 2, 500이 된다. 물론, 반대로 장수 한명이 죽을 때마다 200씩 줄기도 한다.[11] 물론 기타큐슈 지역에 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타큐슈의 고쿠라키타 구에 있는 코쿠라 성은 13세기에 지어졌으며,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까지는 모리 가문의 영지였다. 아마 여기서 말하는 기타규슈 성은 코쿠라 성이지 싶다.[12] 김덕령과 이여송은 같은 성우가 연기했다. 즉 해당 장면은 자문자답.[13] 감자, 대나무는 자원 채취량도 낮고, 한 번 캐면 2 ~ 3 타일이 사라진다. 그래도, 매우 효율은 낮지만 가 2번 오면 다시 완전히 자란다는 게 특징. 반면에, 와 일반 나무는 채취를 다 하고 나면 끝이며 다시 자라지도 않는다.[14] 지을 자리에 아군 유닛이 있으면 방앗간이나 본영을 지을 공간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화면 위에 뜬다.[15] 그 흔했던 망루가 하나밖에 없다. 적은 귀갑차를 생산하긴 하지만 한 두개밖에 안 뽑는다. 갑사까지만 뽑아도 이길수 있는셈. 12시 지역은 아예 유닛이 없고 본영 비행체제작소 하나만 덜렁 있다.[16] 미션을 시작하면 '서쪽의 적을 먼저 섬멸하라'라는 멘트가 뜬다.[17] 모든 지상 유닛들 자체가 막다른 지형에 대한 제대로 된 인공지능적 대처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막힌 지형에 자주 걸리거나 이동 중 서로 부딪히면 반응속도에 약간의 지연이 생기기 때문에, 답답한 인공지능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서는 모든 유닛들이 전부 매한가지이긴 하나, 특히나 메카닉 계통의 유닛들의 경우에는 느려터진 이동속도와 시야가 확보될 경우 발휘되는 긴 사정거리 등이 맞물려서, 조선의 반격 게임 자체의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인공지능과 시너지를 일으켜 플레이어들의 평균 혈압 수치를 높이는 데에 일조한다. 이러한 인공지능적인 특징은 본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게임 천하제일상 거상에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18] 다만 앞서 도쿠가와의 서신을 보면 실제로는 황제가 아닌 도쿠가와가 먼저 그런 계략을 제시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단지 황제국인 명의 장수들이 오랑캐인 도쿠가와가 대단하다고 하긴 뭐하니까 황제의 덕으로 돌린 것일수도.[19] 화산 오브젝트는 후속작인 천하제일상 거상에서도 그대로 쓰인다. 화산 지형 던젼의 전투 지형에서 배치되어 원작에서처럼 간혹 분화구로부터 용암 분출물 덩어리를 발사한다. 맞으면 큰 데미지를 입는다.[20] 화염차와 망루 업그레이드를 한 망루들을 주작이 생성되는곳에 배치해두면 명의 병력이 내려오지를 못 한다. 대나무는 정말 엄청나게 많으니 이런식으로도 플레이해서 느긋하게 병력 모으기와 안택선을 생산할 수 있다.[21] 현혹으로 일꾼/건설수레 빼앗아 쓰는 것은 제외한...

[22] 각각의 성우들이 이들의 목소리 연기톤을 사용하나, 실제 생김새는 이순신을 뺀 나머지 둘의 경우 인게임 이미지와 확연히 다르다. 사실 가면을 쓰고 있었던 도쿠가와는 그렇다 쳐도 이여송은 인게임 초상화에서 묘사되는 것과는 상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나와서 목소리로 식별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반격 게임 무료 다운로드 및 멀티하는 방법은 밑에 카페 주소로 가면 다 해결된다.

http://cafe.daum.net/imjin1592



Posted by 동네 오락실 구경하던 형 [동구형]



제20장 전령 급파

제 20장 전령 급파

기본 사항

사용자 국가 - 소속

일본 - 미츠나리군

브리핑 참여자

고니시, 미츠나리

사용 장수 목록

초기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Konishi_Yukinaga.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고니시

 

 

 

 

 

후발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기타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상세 사항

격전 지역

교토

임무 목표

1. 고니시를 동쪽의 탈출로로 탈출시켜라(고니시는 살아야 한다).


명의 배신으로 당황한 서군은 조선군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고니시를 전령으로 급파한다. 참고로, 시나리오 BGM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일본이 아닌 명나라 시나리오 BGM이다.

조선의 반격에서 유이하게 그나마 난이도가 있다고 할 수 있는 미션 중 첫 번째.

화염차와 수송기가 등장하는 미션. 시작은 9시의 동맹의 기지에서 출발하게 되며, 먼저 고니시를 데리고 6시로 도망을 가야 한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시작하자마자 지급되는 네 기의 사무라이들 중 한 기 정도는 구석에 빼돌려 두자. 9시의 동맹 기지는 적 명군이 발석거의 화력으로 기어코 함락시켜버리지만, 적 조승훈이나 이여송은 앞에서 싸우다가 대개 죽는다. 이때 떨어지는 명 장수들의 아이템들을 사무라이로 빨리 주워먹도록 해야한다. 특히 조승훈의 용비늘검을 줍느냐 마느냐가 미션의 난이도를 다소 좌우하기도 한다. 만일 동맹의 유닛이 먹어버렸다면 재빨리 동맹의 병기창고를 폭파시켜 용비늘검을 챙기고 나올 수도 있겠지만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발석거 부대가 맵의 가장자리로 붙어서 밀착 대형으로 가는 경우에는 동맹의 기지에 잠시 머물러서 필요한 것들을 챙기다가 6시 방향으로 난 두 개의 출입구 중 오른쪽 출입구를 통해 잽싸게 도망칠 수도 있다. 6시를 확보했다면 동맹 기지 안의 아군 관측소를 해체하여 약간의 자원을 회수해도 좋다. 떠나기 전에 명 장수들의 아이템들 외에도 어차피 죽을 운명인 동맹 와키자카와 미츠나리를 차라리 이쪽에서 먼저 제거하여 용쇄총이나 값비싼 철력궁을 회수하여 나중에 12시에서 병기창고를 지어 팔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단 6시에 도착하면 6시의 도쿠가와군 병력이 귀순하는데, 적의 뇌격비조가 바로 7시에서 두 기씩 자동으로 생성되어 6시로 쳐들어온다. 이들은 설령 죽인다고 하더라도 두 기씩 개체 수를 유지하면서 무한대로 소환되어 오기 때문에 힘들여가며 잡는 것은 완전히 바보짓이므로, 이들이 건물을 때리든 말든 수송선과 병력을 재빨리 뽑고 고니시를 포함한 병력을 최대한 태운 후 12시로 도망을 가야한다. 귀갑차에 고니시와 보병류 병력을 태우고 귀갑차를 수송기에 태우면 상당한 공간절약 효과를 볼 수 있다. 사무라이와 같은 기병이나 건설수레와 같은 메카닉들은 귀갑차에 태울 수 없으므로 최대한 많이 태우고 올라갈 생각이라면 그만큼 수송선이 더 필요하다. 12시의 육지에 근접할 때 두 군데에 적의 천궁과 망루가 배치되어 있어서 자칫하면 수송기가 격추당할 위험이 있으므로 가로질러 가거나 10시 방향쪽을 거쳐서 가기 보다는 차라리 중앙의 살짝 왼쪽쯤에서 화승총병 두 기 정도가 보초를 서고 있는 곳을 거쳐서 지나가는 게 낫다. 12시에 고니시가 당도하면 그쪽도 아군 편이 되므로, 관측소를 포함한 6시의 건물을 전부 해체하여 자원을 회수해도 좋다.

12시를 확보하면 이쪽으로도 주작을 이용한 적 명군의 창병, 화승총, 주술사 공세가 지속적으로 쳐들어오는데, 재빨리 화염차 업그레이드를 하여 화염차를 여러 기 생산해두고, 조선소를 지어 안택선을 두세 척쯤 건조해준다. 그 후 몸빵 안택선을 두 척 정도 앞서 보내면서 그 뒤를 따를 안택선 한 척에는 고니시를 태운 귀갑차와 화염차 등을 승선시켜서 출발토록 한다. 망루를 지나쳐서 도망가다가 망루 사거리가 안 닿는 곳에서 수리하는 식으로 3시의 육지에 내려야 한다. 사실 한 척으로도 역풍만 맞지 않는다면 도달이 가능하긴 하나 풍향의 변화는 예측이 불가능하여 큰 위험부담이 따른다. 

또한 시작하자마자 용비늘검을 확보하고 관측소를 해체해서 자원을 확보한 다음 6시의 건물들이 우리 편이 되면 전부 다 해체해서 본영과 시장을 죽림에 짓고 농부를 뽑아 목재를 얻으면서 자원 가치 향상으로 목재를 팔아 곡물을 얻으면 보통 생산 미션처럼 플레이 할 수 있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이 경우 뇌격비조, 발석거, 천궁은 무녀의 현혹으로 보이는 대로 뺏어오자. 발석거가 확보되면 뇌격비조를 그만 뺏는 것이 좋다.

고니시를 안택선과 귀갑차로부터 내리게 한 후 함께 데려온 병력들과 함께 3시 끝으로 향하게 한다. 가다보면 아사코와 닌자들이 나오지만, 용비늘검에서 소환된 용과 화염차가 보병류 따위는 그냥 녹여버린다. 3시의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갈 때 아랫쪽으로 딱 붙어서 가면 아사코가 나오지 않는데, 이 경우 탈출을 해도 승리 트리거가 발동되지 않는다. 반드시 아사코를 찾아내서 조우 이벤트를 거친 후 죽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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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고베로 진격하다

제 14장 고베로 진격하다

기본 사항

사용자 국가 - 소속

조선 - 조선군

브리핑 참여자

김덕령, 김시민, 유성룡, 이순신

사용 장수 목록

초기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Gim_Simin.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김시민

 

 

 

 

 

후발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Gim_Deokryeong.png

파일:SYW2PLUS_General_I_Sunsin.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김덕령

이순신

 

 

 

 

기타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상세 사항

격전 지역

고베

임무 목표

1. 농부를 보호하라(김시민은 살아야 한다).
2. 적 진영을 섬멸하라(이순신, 김덕령, 김시민은 살아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 명이 이상하게 참전하지 않는다 해서 조선 혼자 공격을 가기로 하는 미션. 명의 낌새가 묘하다는 떡밥을 뿌린다. 그런데 이 미션 이후에 21장에서... 시작하면 봉화대에서 신기전 망루 업그레이드를 하자. 사실은 하지 않아도 무방하나, 그래도 신기전 망루 한두 개 정도 지어주면 더 편하게 깰 수 있다. 

동맹군 농부가 시작하자마자 천천히 걸어가는데 그냥 농부가 가는 길을 한참 앞서가서 병력으로 다 쓸어버리자. 다행히 적이 뒤에서 나타나 농부를 습격하는 일은 없다. 농부들을 안전하게 보호한답시고 그들과 자신의 병력들을 부비적거리면서 진행하게 되면 간혹 농부가 접어드는 길쪽의 왼편에 있는, 반대편이 막다른 언덕길로 들어가 끄트머리에서 끼어버림으로써 더 이상 임무 자체를 진행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으므로 절대 바짝 붙으면서 진행하면 안 된다. 이 경우에는 눈물을 머금고 메뉴에서 다시하기를 눌러야 한다. 

농부들은 맵 중앙쯤에 도착하면 본영과 방앗간 등의 건물을 짓는데 이것들이 다 완성되면 비로소 우리 건물이 된다. 그 후 방어만 하며 기다리면 이순신이 많은 원군을 이끌고 도착한다.
이때 유성룡은 히로시마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어서 합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적이 너무 약하므로 이순신이 데려온 병력과 뽑아놓은 병력으로 9시를 무난하게 밀고 12시로 향하면 된다. 원군에 화차가 있지만, 이 미션에서는 별도로 화차를 더 추가 생산할 수는 없다. 12시 진영의 적이 공격기로 종종 찔러대서 조금 귀찮은 것 빼곤 딱히 어려울 게 없다. 창고를 본영 위쪽에 지을 경우, 신기전 망루를 지어도 적 공격기가 아슬아슬하게 잘 안닿는 범위에서 나무하는 농부를 공격하기도 하므로 창고는 너무 위에 짓지 말도록 한다.

허준 등용 연구가 미리 완료되어 있기 때문에 농부가 본영과 방앗간을 모두 건설한 후에 바로 훈련하여 투입이 가능하다. 스토리상에는 전혀 개입하는 부분이 없다. 아군 유닛의 치료를 위해서나 전비 최대량을 늘리기 위해서나 사실상 반드시 뽑는 것이 권장되지만, 어쨌든 뽑건 말건 플레이어의 자유임과 동시에 이벤트나 트리거 따위를 통한 시나리오 상의 자발적인 등장은 아니므로 상단의 표에서는 참전 목록에서 제외한다.

그리고 영상에서 보면 이순신이 레벨8로 나타난데다가 대사가 틀리다.

이 미션만 그런게 아닌 바로 이 글을 쓰는 4월 28일이 이충무공 탄신일이기 때문이다. 그 날 하루만큼은 이순신의 레벨이 8에다가 대사도 틀려진다. 대사는 대략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생일 선물은 준비하셨는지요? 이런 말을 한다.

마지막으로 허준에 대해 알아봅시다.


조선 역사에 길이 남을 명의.

한국 한의학 발전의 지대한 공헌자.

조선 중기의 명의의 제자. 자는 청원(淸源)이고 호는 구암(龜巖)이다. 본관은 양천으로 경기도 양천현 파릉리(오늘날의 서울특별시 강서구 등촌2동)에서 출생한 걸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서지학계(서지학자 이양재씨 주장)를 중심으로 경기도 대강면(현재 파주시)에서 출생했다는 학설이 등장해 논란 중에 있다.
양천허씨 시조 허선문(許宣文)의 20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경상우수사를 지낸 허곤(許琨)이며 아버지는 용천부사를 지낸 허륜(許碖)이다. 어머니는 허론의 소실 영광 김씨다. 이복형으로 허옥(許沃)이 있으며, 바로 아랫동생인 허징(許澂)은 같은 어머니가 낳은 동복형제로, 허준은 허륜의 차남이다. 일단 허준이나 허징은 족보에는 서자로 표기되어 있다. 허징도 형 못지 않게 비범한 인물로 서자이면서도 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시절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의 딸과 결혼까지 한다. 서얼은 과거시험 못본걸로 아는데 허징은 얼자는 아니라서 문과에 응시한거요??

소설 동의보감 등에서는 그가 서자라서 설움받고 가난하게 지내며 경상도의 명의 유의태에게 의학을 배웠다고 나오나 이는 어디까지나 소설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애초에 '유의태'라는 사람은 가공인물이고, 그 모델이 될듯한 유이태라는 인물은 한참~(150년뒤 숙종대)후 의 인물이다. 허준이 어디서 어떻게 의학을 배웠는지는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알 도리가 없다. 아예 처음부터 서자가 아니고 후대의 족보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주장도 소수 있지만 이를 확실히 입증할 만한 물증은 없다. 따라서 서자였다는게 중론인데 서자라고 유별나게 차별받거나 가난하게 사는 그런 환경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허준의 집안이 서자를 강하게 차별하는 집안이라면, 같은 서자인 허징이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위에 언급한 화려한 대접을 받았을 리가 없다. 즉 집안에서의 좋은 대우+본인들의 재능이 겹쳐서 성공했다는게 정설.

선조대의 관료이자 학자인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에 의하면 1569년에 유희춘 자신이 허준을 이조판서 홍담에게 내의원에 천거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기록이 있고 1573년에 정3품 내의원정에 올랐다는 것으로 보아 1569년에 내의원에 들어간 것으로 보여진다.

1575년부터 선조를 진료하는 의원이 되었고 1578년에는 내의원 첨정에 올랐으며 1587년에는 어의 양예수와 함께 선조를 치료하여 호피를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1590년에는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여 그 이듬해에 당상관에까지 오르게 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의 곁을 떠나지 않고 모셔서 전후 호성공신 3등에 제수되었다. 게다가 임진왜란에는 류성룡,이덕형,이항복,이원익,이산해와 더불어 피난가지 않고 자진해서 조정에 남아 선조를 모셨다이씨가 왤케 많아 드라마 등에서 의료기록을 빼내서 늦게 선조에게 도착한 탓에 선조가 삐쳤다는 내용은 창작이라 보면 된다.

1596년에는 광해군의 천연두를 고쳐 종2품의 가의대부에 제수되었다. 이 때부터 선조의 명으로 조선의 실정에 맞는 의서편찬 작업에 착수하였다.[1]그러나 정유재란 발발로 중단했다가 1600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편찬을 할수 있게 되었다. 1606년에는 양평군에 제수되고 정1품 품계인 보국숭록대부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중인에게 너무 높은 직책이라는 대간들의 반발로 제수가 잠시 보류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품서용 원칙이 적용되는 잡과 급제자는 정3품 당하관이 승진의 끝이다. 게다가 허준을 제외하면 잡과 출신으로 정1품까지 승진한 사람은 조선시대 500년을 통틀어 역관 출신인 오경석이 유일하다.

게다가 오경석은 개화기 직전의 사람이다. 즉 선조, 광해군(1500년대 말 1600년대 초)때 활약한 허준이 최초가 된다. 어찌 되었든 중인의 몸으로 정1품에 오르는 것이 논의될 정도이면 허준이 엄청 대단한 것이 맞다. 아무리 지체 높은 명문가의 자제라고 해도 정1품에 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능력과 처세, 심지어 운까지도 겸비되어야 하고, 그조차도 바늘구멍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중인이 그 자리까지 오르는 것이 얼마나 극악의 난이도일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2] 현대로 비유하자면 9급 공무원 출신이 총리까지 승진하는 수준.

당시에도 백성들 사이에서 허준의 입지전적인 출세 스토리는 굉장한 화제가 되었다고 하며, 이것이 백성들 사이에 계속 회자되면서 허준 설화가 전국 곳곳에서 전해지는 계기가 된다. 이런 허준과 관련한 설화 혹은 전설들이 우리가 아는 소설과 드라마의 소재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1608년에 선조가 사망하면서 어의인 그는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원래 왕이 승하하면 책임을 맡았던 어의는 형식적으로 귀양을 갔다가 곧 풀려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곧바로 풀려나서 광해군의 어의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1610년에 "동의보감"의 편찬을 완료했다. "동의보감"은 당시의 조선과 중국의 모든 의서를 참고하고 허준의 연구가 더해져서 완성된 의학백과사전으로 나오자마자 조선, 청나라일본에서 엄청난 히트를 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사람들마다 북경의 서점에서 "동의보감"이 팔리고 있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다.

이후 각종 의서 편찬에 매진하였는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나라의 재건을 위한 의학자로서의 노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615년에 77세로 사망하여 생전에 보류되었던 정1품 양평부원군 보국숭록대부에 추증되었다. 허준의 직계 자손들은 현재 북한에 거의 남아 있어서 자세한 파악이 되어 있지 않다.

동의보감과 다른 한 권을 제외하면 전부 전염병 관련 저작이다. 드라마에서는 침술의 달인으로 곧잘 나오지만 실제로는 역병의 예방 및 치료가 주 분야였다. 실제로 실록에서도 허준 본인이 선조에게 직접 소신은 침 놓는 법을 모르옵니다라고 폭탄 발언(?)을 한 기록도 있다.

이 이르기를 "침을 놓는 것이 어떻겠는가?"하니, 허준(許浚)이 아뢰기를,
"증세가 긴급하니 상례에 구애받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 차례 침을 맞으시는 것이 미안한 듯하기는 합니다마는, 침의(針醫)들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침을 놓아 열기(熱氣)를 해소시킨 다음에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합니다. 소신(小臣)은 침 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마는 그들의 말이 이러하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허임[3]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經脈)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阿是穴)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하였다. - <선조실록> 선조 37년(1604년) 9월 23일


물론 침의가 따로 있으니 겸양의 의미겠지만 주 전공은 아니었던 것. 그렇다고 해서 허준이 침술에 아주 문외한이란 뜻은 절대로 아니다. 당대에 침술은 의관이라면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는 기본 기술이었다. 굳이 현대 의학으로 비유하면 실력있는 내과 전문의가 외과 수술 실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물론 당시의 침술이 현대의 외과 수술과 같은 것은 아니니 주의.) 

허준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에 위치해 있다. 아쉽게도 이곳은 민통선 지역이라서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위치가 위치라 오랫동안 실전되었다가 1991년에야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에는 봉분과 석물이 묘임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방치된 상태였으며 묘비도 두 동강이 났을 정도[4] 로 상당히 훼손된 상태였었다고 한다. 다행히 묘비에 그의 묘임을 알리는 '허준', '양평군', '호성공신'이라는 표기가 남아 있어서 허준의 묘로 판명될 수 있었다. 

2009년, 동의보감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다만 등재 이후 '의서로서는 세계최초' 같은 보도기사가 나왔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타밀 의료기록 모음집과 디오스쿠리드 필사본 등의 의학서적이 이미 199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만 해도 광영인데 괜히 사족을 붙였다가 찬물을 끼얹는 케이스. 물론 이것이 동의보감의 역사적 가치를 깎지는 않는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위에 나와 있듯이 동의보감은 선조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편찬되었단 것이며, 허준의 단독저작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공동 작업으로 당대의 여러 명의들이 왕실 서고와 민간에 떠돌던 수많은 의서들을 참고하여 제대로 된 것을 추려내고 자신의 의학관과 경험을 첨가하여 작업한 것이다. 오늘날 허준의 단독저작인냥 취급받는 것은 전란으로 어의들이 모두 흩어지며 중지된 작업을 전쟁 후 허준이 마무리 한 덕이다.

허준이 해부할 시체가 부족해서 제자들을 해부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당연히 사실이 아니니 믿지 말자. 당장 허준은 임진왜란을 겪은 인물이고, 비록 근왕을 해서 직접 전화에 휩쓸리지는 않았다고 하나 역병이나 기아로 인해 시체를 접할 기회는 충분히 많았을 것이다(....). 또한 허준은 내의원 소속의 의관인 만큼 제자를 두었다면 당연히 주변에 소문이 퍼졌을 텐데, 그런 사람의 제자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면 당대에도 상당한 이슈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당연히 그에 관련된 기록은 없다. 무엇보다 조선 사회는 유교 사회이며, 학파로 당파가 갈릴 정도로 사제관계가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허준이 제자를, 그것도 해부 목적으로 살해했다는 것이 기록으로 남을 정도로 사실이었다면 현재 동의보감의 저자는 허준일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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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기타규슈 정벌


제 12장 기타규슈 정벌

기본 사항

사용자 국가 - 소속

조선 - 조선군

브리핑 참여자

김시민, 유성룡, 이순신

사용 장수 목록

초기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Gwon_Yul.png

파일:SYW2PLUS_General_Gim_Deokryeong.png

파일:SYW2PLUS_General_Gim_Simin.png

권율

김덕령

김시민

 

 

 

파일:SYW2PLUS_General_Samyeongdang.png

파일:SYW2PLUS_General_Ryu_Seongryong.png

파일:SYW2PLUS_General_I_Sunsin.png

사명대사

유성룡

이순신

 

 

 

후발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기타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상세 사항

격전 지역

기타규슈

임무 목표

1. 남쪽과 서쪽의 섬을 장악하라(유성룡, 이순신은 살아야 한다).
2. 적을 섬멸하라.


한편 명으로부터 참전 소식을 전해받은 조선군은 명이 참전한 것에 의아해 하며 기타큐슈에서 명군과 합동 작전을 펼치기로 한다.

이번 미션의 특이사항은 장수가 무려 6명이라는 점이다. 이 임진록 게임에서 뽑을 수 있는 장수는 5명까지가 끝이고 그 이후로는 뽑을 수가 없다. 헌데, 이 미션에서는 특별히 한명을 더 줬다. 전비 역시 기존의 2, 500에서 200원 늘은 2, 700이다. 적은 10시 섬, 6시 섬, 3시에 진영을 갖추고 있다. 10시, 6시 섬 멀티는 매우 약해서 시작하자마자 영웅들만 데리고 가도 털어버릴 수 있다. 조선소는 두 개씩이나 필요하지는 않으니 수송선을 확보한 후에 하나 정도는 해체해도 문제는 없다. 비행기는 생산이 불가능하므로 수송선을 통해 움직여야 한다. 사명대사의 번개술이나 이순신의 기공신포 정도는 연구을 해주어 건물 파괴에 기여토록 한다. 간간이 병력도 뽑으면서 남는 병력들은 기지를 지키도록 한다. 농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곳 근방에 적병이 내리기도 하니 조심해야 한다. 또한 가미가제 테러가 매우 자주 온다. 

어쨌든 영웅만 잘 활용하고 전 병력을 기지 수비로 돌린다면 막기 어렵지 않다. 드랍을 통해 첫 번째로 6시나 10시 섬 하나를 털어주면서 아이템도 구입하고 기술들의 연구도 차근차근 진행해준다. 이를 기반으로 손쉽게 나머지 섬 하나를 털 수 있는데, 주의할 점이 6시와 10시 섬을 다 털면 명의 원군이 나타나서 3시에 어택땅하다가 다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남은 한 군데는 마저 쓸어버려기 전에 잠시 남겨두자. 그 후 주력 병력을 3시 공략을 위해 그 근방 육지에 모두 내려놓고, 섬에 남겨둔 잔류 병력 몇몇으로 6시 또는 10시의 건물을 마저 깬다. 직후 등장하는 명군과 이여송이 탱킹하게 두고 적의 본진을 민다. 번개술과 기공신포 등의 기술을 건물에 쏴대면서 싸우면 쉽게 이길 수 있다. 그동안 상인에게서 아이템을 충실히 구입하여, 철력궁이나 백사탕, 달마의 염주 등등이 있다면 더욱 쉬울 것이다. 

중반임에 불구하고 매우 빨리 클리어가 가능한 미션 중 하나이다. 이순신과 사명대사로 치고 빠지며 번개술과 기공신포로 적 건물과 유닛을 갉아먹으며 싸워도 영웅만으로 클리어가 가능하다.

뱀발이지만, 이 시대에 기타규슈(기타큐슈의 잘못)라는 지명은 없었다! 큐슈의 북쪽을 의미하는 지명 "기타큐슈"(北九州)는 해당 지역의 다섯 도시가 대등합병하는 과정에서 1963년에 지어진 지명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영웅으로 나오는 사명대사 유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생애

임진왜란 이전

경상남도 밀양에서 임수성(任守成)의 아들로 태어났다.[1] 일찍 부모를 여읜 사명당은 13세에 황여헌(黃汝獻)을 사사(師事)하다가 황악산 직지사에 들어가 신묵화상(信默和尙)에게 선(禪)을 받아 승려가 되었고, 거기에서 불교의 오의(奧義)를 깨달았다. 1561년(명종 16) 선과(禪科)에 급제하고 당시의 학자·대부·시인들이었던 박사암(朴思菴)·허하곡(許荷谷)·임백호(林白湖) 등과 교제하였다. 1575년(선조 8) 선종(禪宗)의 주지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고 묘향산에 들어가 청허(淸虛)대사(서산대사)에게서 성종(成宗)을 강의 받고 크게 각성하였다. 금강산 보덕사(報德寺)에서 3년을 지내고, 다시 팔공산·청량산·태백산 등을 유람했으며, 43세 때 옥천산(沃川山) 상동암(上東菴)에서 하룻밤 소나기에 뜰에 떨어진 꽃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문도들을 해산시킨 다음 오랫동안 참선하였으며, 46세에 오대산 영감란야(靈鑑蘭若)에 있다가 역옥에 죄 없이 걸렸으나 무죄 석방되어 금강산에서 3년 동안 지냈다.

임진왜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순안에 가서 청허의 휘하에 활약하였고 청허가 늙어서 물러난 뒤 승군(僧軍)을 통솔하고 체찰사 류성룡을 따라 명나라 장수들과 협력하여 평양을 회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함께 경상도 의령에 내려가 전공을 많이 세워 당상(堂上)에 올랐다. 1594년에 명나라 총병(摠兵) 유정(劉綎)과 의논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를 울산 진중으로 세 번 방문하여 일본군의 동정을 살폈다. 왕의 퇴속(退俗) 권유를 거부하고, 영남에 내려가 팔공(八公)·용기(龍起)·금오(金烏) 등의 산성을 쌓고 양식과 무기를 저축한 후 인신(印信)과 전마(戰馬)를 바치고 산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였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수 마귀를 따라 울산왜성에 쳐들어갔으며, 이듬해 명나라 장수 유정을 따라 순천왜성에 이르러 공을 세워 가선동지중추부사(架善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임진왜란 이후

1604년(선조 37) 국서를 받들고 일본에 가서 교토 후시미 성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조선인 3500명을 데리고 이듬해 돌아와 가의(嘉義)의 직위와 어마(御馬) 등을 하사받았다. 그때는 청허가 입적한 이듬해로 묘향산에 들어가서 스승의 영탑에 애하고 치악산으로 들어갔다.

선조의 부보를 듣고 한양으로 달려와 배곡한 후 광해군의 서변을 지키게 하려 하였으나 병을 얻어 응하지 못하고 가야산에 들어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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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로는 이미 사망했을 심유경이 이번 판에 등장합니다.

이순신 김시민 김덕령도 살아있는 가상 역사 게임으로 보시면 됩니다.


제 11장 후쿠오카 진격

기본 사항

사용자 국가 - 소속

명 - 명군

브리핑 참여자

송응창, 이령, 이여송

사용 장수 목록

초기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Shen_Weijing.png

파일:SYW2PLUS_General_Li_ning.png

파일:SYW2PLUS_General_Chen_Lin.png

심유경

이령

진린

 

 

 

후발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기타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상세 사항

격전 지역

후쿠오카

임무 목표

1. 적 방어선 배후의 생산시설을 모두 파괴하라.


이전 장과 비슷하다. 또 도쿠가와를 치는 미션이다. 이번에 치는 지역은 바로 후쿠오카다.

처음에 건물이 없고 아군의 대규모 주작 드랍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주작들이 날아가는 경로에 셀 수 없이 많은 보라색의 망루가 지어져있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이 죽는다[9]. 그러므로 본 미션에서는 최대한 빨리 발전을 해야한다. 적은 틈을 주지 않고 쳐들어오는데, 이번엔 적의 생산 건물이 꽤 많기 때문, 공격할거면 12시의 대장간, 마굿간, 병영을 먼저 쳐야한다. 처음부터 급속히 발전하며 병력을 계속 뽑아줘야한다. 바로바로 효율적이고 빠르게 병력을 뽑아낸다면 망루 없이 막아낼 수 있지만 자신이 없다면 역시 망루를 7~9개 정도 지어주자. 다행히 자원은 풍족하기 때문에 바로 망루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기도 하고, 병력도 무리 없이 뽑아낼 수 있다/ 병력을 모으면서 공세를 막아낸 후 역습을 가서 한 군데를 끝장내는 식으로 하면 이길 수 있는 미션이다.



마지막으로 심유경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심유경

沈惟敬 (Shěn Wéijìng / 선웨이징)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무장. 가흥 지역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발발 후 조선에 파견되어, 일본과의 평화 협상을 위해 고니시 유키나가와 접촉했다. 1593년에는 일본까지 건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 그의 요구 사항을 들었는데, 조선 4도 할양, 명의 황녀를 일본 천황의 후궁으로 보낼 것 등 그의 요구가 너무나 터무니없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이를 도요토미가 왜왕이 되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작하여 명 황실에 보고한다. 그리고 고니시를 위시한 일본 내 반전파들이 도요토미에게 명이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속이기로 입을 맞춘다. 그러니까 고니시와 짜고 희대의 국제 사기를 벌인 것.

명은 이 구라를 믿고 심유경의 외교 능력에 감탄하면서(...) 도요토미를 왕에 책봉한다는 문서를 보냈는데, 거짓 내용을 읽어주기로 한 도요토미의 승려 사이쇼 조타이가 명의 봉공안을 그대로 읽어버리는 바람에 그의 구라는 곧바로 탄로나게 된다. 머리 끝까지 열뻗친 히데요시는 그대로 전쟁을 재개할 것을 명령하고, 그렇게 정유재란이 발발했다.

결국 자신의 구라가 탄로난 뒤 심유경은 일본으로 망명하기 위해 남쪽으로 도망치다가 의령 부근에서 명나라 장수 양원에게 잡혀 천자를 능멸한 죄로 참형에 처해진다. 고니시 역시 모가지가 잘리기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사면됐다.

평가

다만 그를 무조건 까기는 어려운 것이 명의 입장에서 보면 최소한의 피해로 조선을 회복시킬 수만 있다면 마다할 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명의 목적은 자국 군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협상이 성공하고, 조선의 영토를 보전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화의가 가능성이 있을 때의 이야기였고, 애초에 전쟁 지속 중단 여부의 결정권을 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끝까지 야욕을 버리지 못했기에 화의는 애초부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명이 들어줄 수 있는 것은 언제까지나 왕 책봉에 더해봐야 조공을 받는 정도인데 히데요시는 조선 영토를 병합하려고 했기 때문. 그 증거가 화의 도중에 발생한 제2차 진주성 전투로 드러났는데도 심유경은 사태를 파악할 생각도 없이 끝까지 화의를 밀어붙였다. 이는 심유경이 처음부터 조선에 온 목적이 일본과의 화의였기에 전투로 전란이 매듭지어질 경우 자신의 입지가 난처해질걸 염려해 사실 왜곡을 감행하면서까지 화의를 진행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니시 유키나가와 서로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져 장기간 양국을 속이는데 성공했지만 애초에 심유경이나 고니시 유키나가나 양국에서 입지가 거의 없던 인물들이라 속이는데 한계가 있어 결과적으로 화의가 파탄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국 이로인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병력을 추스릴 충분한 시간을 벌어놓고 재침을 시도할 수 있었고 명은 또다시 정유재란에 참전했다가 잘 준비된 일본군과 제대로 붙어 엄청난 인명 피해 및 막대한 재정 소모와 병력 손실을 입기에 이르니 심유경의 화의 추진은 명에게 이득을 주기는 커녕 더 많은 손실을 입힌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심유경이 명나라의 신하라는 점을 감안하면 심유경의 행각은 국가 대 국가의 관점에서 볼 경우 명나라가 괜히 조선에게 외교 분쟁을 해결해주겠다고 나섰다가 결과적으로 조선에게 사기를 친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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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나가사키의 명군대

제 10장 나가사키의 명군대

기본 사항

사용자 국가 - 소속

명 - 명군

브리핑 참여자

송응창, 이여송

사용 장수 목록

초기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Song_Yingchang.png

파일:SYW2PLUS_General_Li_ning.png

파일:SYW2PLUS_General_Li_Rusong.png

송응창

이령

이여송

 

 

 

파일:SYW2PLUS_General_Zu_Chengxun.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조승훈

 

 

 

 

 

후발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기타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상세 사항

격전 지역

나가사키

임무 목표

1. 나가사키에 상륙하여 진영을 갖추어라.
2. 적의 진영을 섬멸하라.


도쿠가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명 또한 군대를 파견한다. 그러나 나가사키에 상륙한 후 어째서인지 도쿠가와를 돕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참전해 도쿠가와의 동군을 공격한다. 심지어 조선군에게 자신들의 출병 사실을 알리기까지 한다. 장수들은 의아해 하지만, 원정함대의 지휘관인 송응창은 천자의 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작전을 감행한다.

최초의 명 미션이다. 도쿠가와와 이야기가 잘 되었다고 알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뒤통수를 치며 명은 다짜고짜 도쿠가와를 공격한다. 시작 후 주어진 수상 병력으로 9시 방향 쪽으로 가며 적선들을 없애고, 주작은 미니맵이 가리키는 6시에 내리자.

손을 빨리 움직여야 한다. 자신이 느리게 발전하고 있다고 해서 컴퓨터가 느릿느릿 러쉬를 와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 미션은 항상 명군이 제일 어렵다. 명군은 초반에 건물들이 들어 차 있지 않은 미션들이 많아서 그렇다. 게다가 임진록 시나리오 인공지능의 특성상, 항상 기지를 만들거나 운영할 때 맨 처음의 러쉬는 무조건 장수가 섞여 들어온다

그래도 이번 미션은 적의 색깔이 3시 진영 하나이기 때문에 할 만하다. 튼튼하고 강력한 망루를 7~9개 정도 모아서 짓고 병력이 어느 정도 모일 때까지 버티다가, 그 후부터는 무난하게 병력을 모은 후 쳐버리면 된다. 장수가 많으므로 아이템을 잘 사면 더 편하다. 6시에 병력을 내린 후 쓸모 없어진 주작들은 시야나 밝히고 죽으면 된다..


조선의 반격에 처음 등장한 장수 송응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송응창


宋應昌 (Song Yingchang, 쑹잉창)
1536-1606

중국 명나라 말기의 관리. 자는 사문(思文). 호는 동강(桐崗).

인화(항주, 항저우) 출신으로 1565년 진사에 등용되었으며 여러 고위직을 두루 거치며 관리로써의 수완을 인정받았다. 1592년에 경략 직급으로 사실상 명군의 2인자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병부우시랑경략비왜군무(兵部右侍郎經略備倭軍務)로 임명되어 조선을 도우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1592년 12월 내내 조선에 파견될 명군과 보급 및 물자를 점검하였으며, 이여송이 이끄는 요동군을 주축으로 한 4만 2천명의 명군을 조직하여 조선에 파견한다. 임진왜란 직전 터진 영하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단기간에 대병력을 편성하여 신속하게 전개한 데엔 송응창의 관리 수완이 한 몫 했으며, 결과적으로 조명 연합군이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명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평화 협상을 시작하자 이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다 그의 정적이었던 병부상서 석성에게 탄핵되어 사임된다. 이후 죽을 때까지 인화에서 지냈다.

저서로 경략복국요편(經略復國要編)을 편찬하였으며, 이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군의 1차사료로써 임진왜란을 명군의 입장으로 관찰할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명 연합군이 펼쳤던 여러 작전 및 조선 장수들에게 내리는 지령 등. 읽어보면 당시 송응창이 조선에 파견된 명군의 보급 문제로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수있다. 징비록 드라마에서 보면 왜곡된 인물이다. 남병의 수장답게 북병의 수장 이여송과 같다고 하겠지만 실록과 징비록에서 다르다 개념적이였고 일본의 음모와 조선분할에 대한 명의 논쟁을 조선에 알리고 왜군의 터무니 없는 요구 조건을 일축하였다 그리고 이여송이나 북병장수들 처럼 거만하지 않았다

징비록에서는 최일화씨가 맡았다. 굳이 특이점이 있다면, 심유경과의 국제사기극이 탄로나자 울화통이 터진 나머지 심유경에게 니킥을 먹인단 거다(…). 조인트 까인 심유경의 반응은 .


Posted by 동네 오락실 구경하던 형 [동구형]



제9장 쓰시마 정벌

제 9장 쓰시마 정벌

기본 사항

사용자 국가 - 소속

조선 - 조선군

브리핑 참여자

김덕령, 유성룡, 이순신

사용 장수 목록

초기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Gim_Deokryeong.png

파일:SYW2PLUS_General_Gim_Simin.png

파일:SYW2PLUS_General_Ryu_Seongryong.png

김덕령

김시민

유성룡

(폭마혈도)

 

 

파일:SYW2PLUS_General_I_Sunsin.png

파일:SYW2PLUS_General_Heo_jun.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이순신

허준

 

 

 

 

후발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기타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상세 사항

격전 지역

쓰시마

임무 목표

1. 김덕령은 폭뢰격으로 나무를 태워라(유성룡, 김덕령은 살아야 한다).
2. 적의 진영을 섬멸하라(유성룡은 살아야 한다).


고니시의 설득에 조선 조정은 일리가 있다 판단하여 병력을 보충하고 군수물자를 증강해 대대적인 일본 진출을 진행한다. 첫 출전으로 쓰시마를 점령하기로 하는데, 이순신 제독이 바람을 이용한 화공을 제안하고 김덕령이 그 임무를 자청하여 폭마혈도를 받게 된다.

오랜만의 조선 미션이다. 이 미션은 정석대로라면 처음에 미니맵에서 상륙하라는 지점에 내려서, 폭마혈도를 들고 있는 김덕령이 폭뢰격으로 불을 붙여 나무를 태우고 그 안에 들어가서 얼마 없는 적을 격퇴한 후, 수송기가 실어다 준 농부들로 건물을 짓고 발전하여 적을 밀어버리는 것이 정석 플레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처음 주어진 거북선 2기와 판옥선 2기가 굉장히 강하다. 시작하자마자 물길을 따라 9시로 직행하여, 해안가의 적을 쓸어버린 후 상륙하자. 그 후 죽지 않아야 하는 유성룡과 김덕령을 알아서 잘 컨트롤하며 9시의 적을 한 방에 밀어버리자. 
이 전략이 먹히는 이유는 아군의 병력이 너무 많고, 또 김덕령의 폭뢰격이 장난 아니게 강해서 적의 병력이 모이기도 전에 개박살을 낼 수 있기 때문. 그냥 밀어도 되지만 걱정이 된다면, 처음에 원거리 유닛 한 기로 적을 끌어와서 판옥선과 거북선으로 다 죽인 후 상륙해도 된다. 어쨌든 적이 병력을 모으기 전에 신속히 몰아쳐야 하는게 포인트. 

그 후 6시를 밀고, 원래 가기로 해야 했던 곳에 가서 약간 있는 적을 다 죽이면 끝. 아주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다. 정석대로라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아군은 창병, 의병, 궁병 같은 초반 유닛밖에 소환을 못 하는데에 비해서 9시 진영은 수송선, 공격기, 귀갑차 같은 고급 유닛들을 뽑아내기 때문. 폭뢰격을 마나가 100이 되는대로 적 망루를 1순위로, 건물들 옆에 붙어서 써주자. 일본 건물은 내구도가 특히 부실하여 한 방에 날아가버리거나,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이렇게만 하면 쉽게 끝낼 수 있다. 초반에 너무 많은 병력과 영웅을 지급해준 점과 더불어 폭뢰격이 건물에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간과한 제작진의 패착이라 볼 수 있다. 그나마 김덕령으로 밸런스를 맞췄지 곽재우라면..








 


게임이 아닌 실제 역사적으로 대마도 정벌에 대해서도 알아봅시다.






대마도 정벌(對馬島征伐)은 13세기에서 16세기까지 한반도와 중국을 침략하여 노략질하던 왜구의 본거지인 쓰시마(대마도)을 정벌한 사건이다.

역사적으로 제1차 대마도 정벌은 1389년(고려 창왕 2년) 박위가 이끌었으며, 제2차 대마도 정벌은 1396년(조선 태조 5년)에 있었다. 가장 유명한 제3차 대마도 정벌은 1419년(세종 1년)에 이종무가 이끈 정벌로, 기해동정(己亥東征)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오에이의 외구(일본어応永の外寇)라고도 부르며, 당시 대마도에서는 누카다케 전쟁(糠嶽戰爭)이라고 하였다.

배경[편집]

쓰시마는 조선과 일본 양국 사이에 있어 중개를 맡는 특수 사정도 있거니와, 원래 그 토지가 협소척박(狹小瘠薄)하여 식량을 밖에서 구해야 생활을 유지하므로 고려 말부터 조공과 동시에 미곡(米穀)을 받아갔다. 또 조선에서도 쓰시마 섬을 우대하였으며 쓰시마는 통상의 이익을 독점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땅에 기근이 들 때에는 해적으로 나타나 해안을 약탈하므로 병사를 일으켜 정벌하게 되었다.

제1차 정벌[편집]

1389년(창왕 2년) 음력 2월에 박위가 병선 1백 척을 이끌고 쓰시마를 공격하여 왜선 300척을 불사르고, 노사태(盧舍殆)를 진멸하여 고려의 민간인 포로 남녀 1백여 명을 구출하였다.

제2차 정벌[편집]

1396년(태조 5년) 음력 12월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 김사형이 오도 병마처치사(五道兵馬處置使)가 되어 쓰시마를 정벌하였다.

제3차 정벌[편집]

원인[편집]

1418년(태종 18)에 대마도는 큰 흉년이 들었다. 당시 대마도주(對馬島主)인 종정무(宗貞茂, 일본어소 사다시게[*]) 또는 종정아(宗貞芽)가 죽고 아들 종정성(宗貞盛, 일본어소 사다모리[*])가 뒤를 잇게 되었는데, 흉년이 들어 식량 문제가 심각해지자 크게 들고 일어나 명나라의 해안 지역으로 가던 도중, 조선의 비인(庇仁)·해주(海州) 해안 지역을 약탈하게 되었다. 조선은 이때 승계한 새 도주인 종정성이 왜구를 선동한 것이라고 의심하여 직접 쓰시마 섬을 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이때 기록을 보면, 명나라로부터 돌아오는 왜구를 중간에서 공격하는 방법과 쓰시마 섬의 본거지를 치는 두 가지 방법을 논의한 것으로 나온다.

1419년(세종 1년) 6월 9일, 상왕이 된 태종은 대마도를 정벌할 것을 중외(中外)에 교유하였다.[1]

경과[편집]

당시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고 상왕이 된 태종은 아직 군사에 관한 결정을 직접하고 있었다. 태종의 주도 아래 장천군 이종무를 삼군 도체찰사로, 영의정 유정현을 삼도 도통사(三道都統使)로, 의정부 참찬 최윤덕을 삼군 도절제사(三軍都節制使)로 명하고, 우박(禹博), 이숙묘(李叔畝), 황상(黃象)을 중군 절제사, 유습(柳濕)을 좌군 도절제사, 박초(朴礎)와 박실(朴實)을 좌군 절제사로, 이지실(李之實)을 우군 도절제사로, 김을화와 이순몽(李順蒙)을 우군 절제사로 삼아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3도에 있는 병선 227척과 병사 1만7천 명을 거느리고 음력 4월에 출병하도록 명하였다.

1419년(세종 1) 음력 6월 19일 거제도 남쪽 주원방포를 출발하여 20일에 쓰시마 섬에 도착하였다. 이종무는 도주 종정선에게 항복을 권하였으나 대답이 없자 왜구를 수색하여 1백여 명을 참수하고 2천여 호의 가옥을 불태웠다. 131명의 명나라 포로를 찾아내었다. 29일에는 가옥 70여 호를 태우고 명나라 사람 15명과 조선인 8명을 구출하였다.

이종무 장군은 좌군과 우군에게 두지포에 포진하라 명령하고 자신은 음력 7월 3일에 주력함대(舟師)를 이끌고 거제도로 철수했다. 대마도에 하륙한 지 13일만이다. 정벌군 지휘부를 일단 빼낸 태종은 병조판서 조말생으로 하여금 대마도 도주에게 항복 권고문을 보내도록 했다.

선지(宣旨)하노라.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鷄林)에 예속했으니, 본디 우리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 다만 그 땅이 심히 작고, 또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이 살지 않는지라, 이러므로 왜인으로서 그 나라에서 쫓겨나서 갈 곳이 없는 자들이 다 와서, 함께 모여 살아 굴혈을 삼은 것이며, 때로는 도적질로 나서서 평민을 위협하고 노략질하여, 전곡(錢穀)을 약탈하고, 마음대로 고아와 과부, 사람들의 처자를 학살하며, 사람이 사는 집을 불사르니, 흉악무도함이 여러 해가 되었으나 우리 태조대왕(太祖大王)께서는 지극히 어질고 신무(神武)하시므로, 하늘 뜻에 응하여, … 대마도의 작은 추한 놈들을 섬멸하게 하니, 마치 태산이 까마귀 알을 누르는 것과도 같고, 맹분(孟賁)·하육(夏育)같은 용사가 어린아이를 움키는 것과도 같으나, 우리 태조께서는 도리어 문덕을 펴고, 무위(武威)를 거두시고, 은혜와 신의와 사랑과 편안케 하는 도리를 보이시니, 내가 대통을 이어 나라에 임한 이래로 능히 전왕의 뜻을 이어서, 더욱 백성을 측은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비록 조그마한 공손하지 못한 일이 간혹 있어도, 오히려 종정성(宗貞盛)의 아비 종정무(宗貞茂)의 의를 사모하고 정성을 다한 것을 생각해서, 범하여도 교계(較計)하지 않았으며, 통신하는 사신을 접할 때마다 사관(使館)을 정하여 머물게 하고, 예조에 명하여 후하게 위로하고, 또 그 생활의 어려움을 생각하여, 이(利)를 꾀하는 상선(商船)의 교통도 허락하였으며, 경상도의 미곡을 대마도로 운수한 것이 해마다 대개 수만 석이 넘었으니, 그것으로 거의 그 몸을 길러 주림을 면하고 그 양심을 확충하여, 도적질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천지 사이에 삶을 같이할까 하였노라.

나의 용심(用心)함도 또한 부지런히 하였더니, 뜻밖에도 요사이 와서 배은 망덕하고 스스로 화근을 지으며, 망함을 스스로 취하고 있으나, 그 평일에 귀화한 자와 이(利)를 얻으려고 무역하거나 통신 관계로 온 자와, 또 이제 우리의 위풍(威風)에 따라 항복한 자는 아울러 다 죽이지 아니하고, 여러 고을에 나누어 두고서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어서 그 생활을 하게 한 것이며, 또 변방 장수에게 명하여, 병선을 영솔하고 나아가서 그 섬을 포위하고 모두 휩쓸어와 항복하기를 기다렸더니, 지금까지도 그 섬 사람들은 오히려 이럴까 저럴까 하며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내 심히 민망히 여긴다. 섬 가운데 사람들은 수천에 불과하나, 그 생활을 생각하면, 참으로 측은하다. 섬 가운데 땅이 거의 다 돌산이고 비옥한 토지는 없다. 농사하여 곡식과 나무를 가꾸어서 거두는 것으로 공(功)을 시험할 곳이 없으므로, 장차 틈만 있으면, 남몰래 도적질하거나, 남의 재물과 곡식을 훔치려 하는 것이 대개 그 평시에 저지른 죄악이며, 그 죄악이 벌써부터 가득차 있는지라, 어두운 곳에서는 천지와 산천의 신이 묵묵히 앙화를 내리고, 밝은 곳에서는 날랜 말과 큰 배며, 날카로운 병기와 날쌘 군사로써 수륙의 방비가 심히 엄하니, 어디가서 주륙(誅戮)의 환을 만나지 아니할 것인가. 다만 고기 잡고, 미역 따고 하여 매매하는 일은 이에 생활의 자료가 되는 바인데, 이제 와서는 이미 배은하고 의를 버려 스스로 끊는 것이며, 내가 먼저 끊을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세 가지를 잃은 자는 기아를 면치 못할 것이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뿐이니, 이에 대하여 계책하기도 또한 어려운 일이다.

만약 능히 번연(飜然)히 깨닫고 다 휩쓸어 와서 항복하면, 종정성은 좋은 벼슬을 줄 것이며, 두터운 녹도 나누어 줄 것이요, … 이 계책에서 나가지 아니한다면, 차라리 무리를 다 휩쓸어서 이끌고 본국에 돌아가는 것도 그 또한 옳을 일이어늘, 만일 본국에 돌아가지도 아니하고 우리에게 항복도 아니하고, 아직도 도적질할 마음만 품고 섬에 머물러 있으면, 마땅히 병선을 크게 갖추어 군량을 많이 싣고 섬을 에워싸고 쳐서 오랜 시일이 지나게 되면, 반드시 장차 스스로 다 죽고 말 것이며, 또 만일 용사 10여 만명을 뽑아서 방방곡곡으로 들어가 치면, 주머니 속에 든 물건과 같이 오도가도 못하여, 반드시 어린이와 부녀자까지도 하나도 남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는 까마귀와 소리개의 밥이 되고, 물에서는 물고기와 자라의 배를 채우게 될 것이 의심 없으니, 아, 어찌 깊이 불쌍히 여길 바 아니겠는가. … 이제 선지(宣旨)로써 일의 마땅함을 자세히 알게 하노니, 잘 생각하라.

 
— 세종대왕실록 4권 1년 7월 17일 (경신)

귀화한 왜인 등현(藤賢)이 항복 권고문을 가지고 대마도로 떠났다. 대마도는 예부터 조선의 땅이었으니 본국으로 돌아가든지 항복하라는 것이다. 위기를 느낀 대마도 도주가 도이단도로(都伊端都老)에게 신서(信書)를 보내어 항복하기를 빌고 인신(印信)을 내려 줄 것을 청원했다.

대마도를 다녀온 도이단도로(都伊端都老)가 수강궁에 무릎을 꿇고 대마도 도주의 항복을 전했다. 태종은 항복을 가납하고 교유했다.

사자(使者)가 서신을 전해 너의 항복의 뜻을 알았노라. 본도인(本島人)을 돌려보내는 것과 인신(印信)을 내려달라는 것이 가상하다. 너희들이 작은 섬에 모여들어 굴혈을 만들고 마구 도적질을 하여 자주 죽음을 당하는 바 이는 하늘이 내려 준 재성(才性)이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작은 섬은 대개 다 돌산이므로 토성이 교박(磽薄)해서 농사에 적합하지 않고 바다 가운데 박혀 있어 물고기와 미역의 교역에 힘쓰나 사세가 그것들을 대기에 어렵고 바다 나물과 풀뿌리를 먹고 사니 굶주림을 면하지 못해 양심을 잃어 이 지경에 이르렀을 뿐이니 나는 이것을 심히 불쌍하게 여기노라.

이제 너희들의 소원에 따라 비옥한 땅에 배치해 주고 하나하나에 농사짓는 차비를 차려 주어 농경의 이득을 얻게 하여 굶주림을 면하게 하여 주리라. 마음을 돌려 순종하고 농상(農桑)을 영위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섬의 행정을 관리할 자를 나에게 보내와 내 지휘를 받도록 할지니라.

 
— 세종대왕실록 5권 1년 10월 18일 (기축)

도이단도로(都伊端都老)를 대마도로 돌려보낸 태종은 정벌군의 전면 철수를 명했다. 두지포에 진을 치고 있던 좌군과 우군이 철군했다. 이후 대마도는 조선의 정치질서 속에 편입되어 조선 국왕이 관직을 내려주는 통치권속에 예속되었다.[2]

결과[편집]

이 원정은 180명의 조선군이 전사하는 등 많은 인명 희생이 따랐으며 분명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원정대가 돌아온 후 다음 원정을 논의하였으나 사정상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원정 이후 대마도주(對馬島主)가 항복을 청하여 옴으로써 사태가 일단락되게 되었다. 대마도주는 또한 신하의 예로서 섬길 것을 맹세하고 경상도의 일부로서 복속하기를 청하였고, 왜구를 스스로 다스릴 것과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하였다. 세종이 이를 허락하고 이후 삼포를 개항할 때에 대마도 도주에게 통상의 권한을 줌으로써 평화로운 관계로 전환되었다.

이 정벌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왜구의 침입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통상을 허락하여 일본인들로 하여금 평화적으로 무역과 내왕을 하도록하는 정책을 펼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명나라의 일본 정벌 차단[편집]

2009년 3월 19일 한국역사연구회 학술 발표회에서 ‘조선 초기 대마도 정벌의 원인과 목적’을 발표하는 이규철 가톨릭대 강사는 기해동정이 왜구 소탕보다는 명나라의 일본 정벌을 저지하기 위한 외교 전략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우선 기해동정 이전 10년간 왜구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꼽는다. 고려말부터 태종 초기까지 기승을 부렸던 왜구의 침입은 태종 9년(1409)부터 크게 감소했다. 10년 만의 왜구 피해에, 그것도 대마도가 조선과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노력하던 상황에서 조선이 대규모 출병을 감행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출정 명령 4일 만에 65일분의 군량과 1만 7000여명의 병력을 준비한 대목도 이전부터 대마도 정벌을 치밀하게 계획했음을 시사한다.

조선의 피해가 뜸했던 때, 왜구의 주요 활동 무대는 명나라 연안지역이었다. 명나라는 일본 쇼군을 통해 왜구를 제어하는 방식을 취했지만 원도의에 이어 등극한 원의지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자 일본 정벌을 계획한다. 조선은 명나라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명나라가 일본 정벌에 나서면 명나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해온 태종으로선 이에 개입하지 않을 명분이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은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쟁을 막기 위해 결국 조선은 명나라의 일본 정벌을 막으려면 명의 왜구 피해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 대마도 정벌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대마도 원정군이 대규모 부대 편성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전면전을 회피한 것도 정벌의 목적이 왜구의 격멸이 아니라 조선의 위력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공격이란 추측을 뒷받침한다. 조선은 정벌을 단행하면서도 일본과 대마도와의 관계를 극단적인 상태로까지 몰고 갈 의도는 없었던 것이다.

이 강사는 조선이 대마도를 정벌해 명나라의 일본 정벌을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대외 목표인 북방지역, 특히 여진으로의 진출과 영향력 확대라는 일거양득을 취했다고 파악한다. 왜구를 제어한 공로로 여진 지역의 실력행사에 대한 명나라의 암묵적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출처:위키백과

Posted by 동네 오락실 구경하던 형 [동구형]




제8장 깃푸 급습

제 8장 깃푸 급습

기본 사항

사용자 국가 - 소속

일본 - 미츠나리군

브리핑 참여자

고니시, 미츠나리

사용 장수 목록

초기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Konishi_Yukinaga.png

파일:SYW2PLUS_General_Ishida_Mitsunari.png

파일:SYW2PLUS_General_Wakizaka_Yasuharu.png

고니시

미츠나리

와키자카

 

 

 

파일:SYW2PLUS_General_Ukita_Hideie.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우기다

 

 

 

 

 

후발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기타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상세 사항

격전 지역

깃푸

임무 목표

1. 깃푸성의 적 진영을 섬멸하라.


참고로 깃푸가 아니라 기후(岐阜)다. 제작진이 헷갈린듯.

오사카를 무사히 방어한 서군은 이 기세로 곧바로 도쿠가와의 본성인 교토 앞에 있는 기후성으로 진격한다.

9시 보라색이 자주 보내는 카미카제와 처음부터 쳐들어오는 12시 진영의 세이쇼오를 주의할 것. 세이쇼오는 건물과 기갑에 강한 지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의해야한다. 세이쇼오가 아이템을 떨어뜨리면 못 쓰는 건 주워서 내다 팔자. 우선 귀갑차 + 조총병만 모일때까지 버텨주고, 적당히 모였다 싶으면 순회공연을 돌자. 어디부터 공격할지는 플레이어가 선택하자. 그 외에는 수비할 때 망루를 귀갑차로 감싸도 좋다.

여담으로 당시 기후를 다스리던 다이묘는 오다 노부나가의 손자인 오다 히데노부로 서군 소속이었다. 즉, 내전을 벌인 셈이다.





오다 히데노부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자.



오다 히데노부(일본어織田秀信1580년 ~ 1605년 6월 24일)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의 무장기리시탄 다이묘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적장손이자 노부나가의 장자인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의 적장자이다. 아명은 산보시(三法師)이며 사부로(三郎)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기후(岐阜)의 성주이자 동시에 조정의 관위가 중납언(中納言)이었던 연유로 기후노 중납언(岐阜中納言)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일본의 사료인 『공경보임(公卿補任)』에는 다이라노 히데노부(平秀信)로 기록되어 있다. 세례명은 페드로이다.

생애

덴쇼 8년(1580년오다 노부타다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덴쇼 10년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당시 조부 노부나가와 부친 노부타다가 모두 주살되면서 마에다 겐이(前田玄以)의 보호 하에 본래의 거처인 기후 성에서 기요스 성(清洲城)으로 거처를 옮겼다. 같은 해, 기요스 회의에서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의 추대를 받아 노부나가의 또 다른 중신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의 지지를 받던 숙부 노부타카(信孝)를 제치고 3세의 나이에 오다 가문의 당주가 되었다. 직할령은 오미 국(近江国) 사카타 군(坂田郡) 3만 석이었으며 나이가 어려 친정이 불가능하였으므로 호리 히데마사(堀秀政)가 영주 대리를 맡았다. 덴쇼 16년(1588년) 이름을 오다 사부로 히데노부(織田三郞秀信)로 바꾸며 성인식을 치뤘는데, 이 때 이름 중 ‘히데’(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따왔으며, ‘노부’는 조부인 오다 노부나가에서 따왔다.

게이초 5년(1600년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가 발발하자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의 서군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동군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이케다 데루마사(池田輝政)에게 패하여 거성인 기후 성을 빼앗기고 지위를 잃은 뒤 고야 산(高野山)에 은거하여 승려가 되었다. 이후 1605년 25세로 사망하였다.

평가

산보시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오다 가문의 가신들을 압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기세를 몰아 교토의 조정으로부터 관백의 지위를 받아내었으며 관백의 지위를 이용하여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군사행동 및 세력 다툼을 금지하는 내전 금지령을 교토 조정(일왕령) 이름으로 포고함으로써 전국의 다이묘들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권위에 굴복하게 하였다. 그럼으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더이상 오다 가문의 후계자인 산보시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이 필요없게 됨에 따라 산보시는 자연스럽게 일개 소 지방의 성주 가문(오다가문)의 산보시가 되었으며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일개 소 지방의 세력가로서 서군의 이시다 미쓰나리의 편에 가담하였다가 몰락하게 된 것이다.

Posted by 동네 오락실 구경하던 형 [동구형]

고니시의 서군이 조선이랑 접촉하자..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동군은 명나라와 접촉을 한다??
거기다가 가토가 직접 사신으로.. ㅎㅎ

게임 공략


제 3장 고베를 치다

기본 사항

사용자 국가 - 소속

일본 - 도쿠가와군

브리핑 참여자

가토, 도쿠가와, 아사코

사용 장수 목록

초기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파일:SYW2PLUS_General_Asako.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파일:SYW2PLUS_General_Table_Blank.png

아사코

 

 

 

 

 

후발 참전 장수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기타 지급 아이템

(해당 없음)

상세 사항

격전 지역

고베

임무 목표

1. 닌자들을 이용해 고베성의 남쪽에 있는 항구를 점령하라(아사코는 살아야 한다).


아사코가 고니시의 저지에 실패하고 조선이 서군의 편을 들 것이 확실해지자 도쿠가와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된다. 이를 위해 명과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항구인 고베를 친다.

일본으로 처음 생산과 건설이 가능한 미션이다. 귀갑차는 아직 사용 불가능하다.

닌자는 원거리 공격 유닛이면서도 체력과 공격력이 괜찮은 편[4]이며 영웅에 강한 추가 피해를 주는 등 좋은 유닛이니 애용해봐도 좋다. 첫 시작 후 병력을 조금만 모으자. 한부대가 모이기 전에 3시에서 적이 오면 막고 역공을 가서 함락시킨다. 3시는 매우 약하지만, 중앙의 적은 상대하기 상당히 힘드므로 웬만해선 싸우지 말자. 3시를 끝낸 후, 약간의 추가 병력과 합쳐 6시로 쳐들어간다. 이 때 닌자가 꼭 있어야 한다. 적 건물이 반파되었을 때 닌자로 점령을 할 수 있다. 점령하면 승리. 역시 금방 끝나는 미션이다(물론 점령 후 곧바로 수리해줘야 역탈취를 면한다). 중앙과 싸우지 않는 것이 포인트.
정말 적 전멸을 하고 싶다면 중앙의 적은 그냥 병력을 많이 모아서 쳐들어가자. 의외로 망루가 허술하게 배치되어있기 때문에 병력을 모아서 가면 크게 어렵지 않게 이길수 있다. 하양 본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하양색이 가토를 포함한 약간의 병력으로 진격하고 있다면 같이 들어가도 좋다. 어차피 가토는 죽어도 상관 없고 몸빵도 해주기 때문.

도쿠가와의 부하로서 가상인물인 아사코가 나온다. 본 게임의 홍일점 영웅.


Posted by 동네 오락실 구경하던 형 [동구형]